공무원에서 개발자로 나아가기까지, 여러 고민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안정적인 경로를 따라갔지만, 점차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게 되었고 시행착오 속에서도 방향을 찾아가는 경험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커리어의 흐름 속에서 저만의 관점과 성장 과정을 공유합니다.
개발자
공무원을 그만두고 개발자가 된 저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까요?

팀블라인드 소개
팀블라인드는 직장인이 회사 이메일로 가입하면 특정할 수 없는 회사 소속의 개인이 글을 자유롭게 남기며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서비스이다. 뉴스 기사에서 부당한 직장 이야기가 다뤄진다면 팀블라인드 커뮤니티의 캡처 화면은 흔히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입사 이후에 미국에도 별도의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블라인드 서비스처럼 미국의 블라인드 서비스도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 테슬라 등 유명한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과 미국은 문화가 다르다 보니 서비스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정책에서 두드러지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한국 개발자 분들이 미국 서비스까지 개발을 맡다가 점점 미국 서비스도 한국만큼 규모가 커지면서 미국/캐나다 등 각지의 개발자를 영입하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시기였다.

한국 서버 개발팀이 서비스를 운영하다가 미국/캐나다 개발자에게 바톤을 넘기면서 긴밀히 협력해야 하는 시점에 있었다. 주기적으로 서로의 업무 내용을 공유하기 위해 한국 시각 기준 오전 9~10시에 양국 개발팀이 서버 개발에 회의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꼭, 업무 내용이 아니더라도 개발에 도움이 되는 툴을 소개하거나 좋은 개발 문화 만들기 위한 주제, 그리고 특정 기술을 주제로 발표하는 기회로 발표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첫째로 희망자가 자원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순번을 정하며 발표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그중 내가 발표를 자원하게 되었다.
발표를 준비한 이유와 준비하게 된 주제
순번으로 걸렸던 것도 아니고 지목 당한 것도 아니었다. 도대체 내가 왜 나서게 됐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두 번 다시 태어나더라도 이런 기회를 경험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든다면 본능적으로 나서게 되는 면이 있다. 그래서 미국 개발자들과 함께 교류하고 싶은 마음에 선뜻 나서게 됐다. 마치 그 시기에 “자바스크립트는 왜 프로토타입을 선택했을까”라는 글에 꽂혀 있었다. 당시에는 이 포스팅을 몇 번을 읽어도 전부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내가 한번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발표를 준비한다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 어려운 주제를 선택했다.
어떤 개념을 이해하거나 정복해 보겠다는 다짐을 하면서도 막상 큰 벽에 부딪히게 되면 거기서 헤어 나올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자발적인 동기로는 오래 가지 못한다. 마찬가지의 경우로 PT를 받는 것도 혼자서는 레그프레스 무게 만땅 치고 4개밖에 못 밀겠다고 생각하던 것이, 옆에 사람이 붙어서 개수를 세고 있으면 10개까지도 하게 된다. 그래서 발표도 외부 동기를 이용한다면 나의 역량을 한층 더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발표 준비와 과정
한국과 미국 개발자 분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까 한글로만 발표 자료를 준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통역하시는 분과 협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통역하시는 분이 계셨지만, 굳이 내가 직접 영어로 말하고자 했던 이유가 있었다. 몇 번의 한/미 양국 개발자의 세미나를 들어 보니 통역하는 과정에서 언어간 스위칭 비용(시간)이 많이 드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용이 영어로만 적혀 있는 경우에는 전적으로 통역사 분의 힘을 빌려야 하기 때문에 통역할 차례가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보니 집중력이 흐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20분 분량의 간단한 발표일지라도 언어 스위칭 비용 때문에 2배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통역이 전문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부분은 슬라이드 노트에 미리 메모해 외운 체(?)하며 내가 직접 언어를 스위칭하여 시간을 절약하며 집중을 유도했다(오, 저 사람 영어 할 줄 아나 봐!).
PPT 화면에 글자가 많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양국 개발자의 원활한 이해를 돕기 위해 불가피하게 2개국어를 모두 화면에 실었다. 양국 개발자의 원활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PPT 자료도 2개국어가 모두 적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먼저 한국어로 발표하면 다음에는 통역사가 번역해 주시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때 내가 한국어로 말하는 틈에 미국 개발자는 통역사의 번역을 듣기 전에 화면을 통해 내용을 먼저 접하게 된다면 보다 집중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미 개발자 대상 글로벌 발표를 하고 난 뒤…
공무원
제가 왜 공무원을 그만두게 되었는지 고민한 흔적을 담아봤어요.

군무원에 도전하기
군무원에 도전하기 전, 나의 상태는
“개발자는 수명이 짧아서 40세가 되면 은퇴해야 된다더라. 지금 상황에서 취업도 잘 안되고 야근만 줄창 해”. 개발이 정말 재미있지만, 주위에서는 “개발은 취미로 해야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현실 세계에서도 종종 들었고 인터넷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도 많이 봤다. 우스갯소리로 개발자 커리어의 끝은 치킨집 사장님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으니까. 개발이 잘 안될 때 치킨집 사장님한테 물어보라는 이야기까지 떠돌았을 정도니까.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는데 섣불리 도전하는 것이 꺼려졌다. 그런 상황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외면하고 개발자가 되기에는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당시에는 개발자 직군에 대한 회의적 시선과 현실의 괴리가 크게 느껴져서 대학교 졸업 이후에는 안정적인 진로를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 고민 끝에 “군무원”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2015년 당시만 하더라도 공무원이라고 하면 인식이 굉장히 좋았었는데 이 기류에 나도 영향을 좀 받았다.
군무원 도전 과정과 군무원을 선택한 이유
사실 처음부터 군무원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과목의 시험을 봐야 하는데 “영어”라는 과목의 장벽이 높기 때문에 단기 합격을 위해서는 영어 시험을 보지 않는 군무원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엄연히 따지자면 영어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토익, 토플, 지텔프(G-TELP) 등의 공인 영어 성적을 증명하여 대체한다. 그래서 당시에는 전산 직렬은 한국사, 국어, 컴퓨터 일반, 프로그래밍언어론 이렇게 4가지를 응시하면 됐다. 당해 시험에서는 프로그래밍언어론에서 과락 때문에 탈락하는 지원자가 상당했는데 다행히도 나는 공부를 시작한 지 약 5개월 만에 합격을 거머쥘 수 있었다.
군무원 생활하기
둥지 떠나 생활하기
내게 기회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최종으로 발령 받은 곳은 충북 영동군에 있는 군 부대였다. 충청북도가 어디 있는지는 아는데 충주시, 제천시, 음성군, 진천군, 단양군, 괴산군, 청주시, 보은군, 옥천군까지는 알았는데 영동군은 친근하게 다가왔지만, 생소한 지역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위치를 설명할 때도 직접 영동군이라고 말하기보다 전라북도 무주군 위, 김천시 왼쪽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빨랐다. 도시 외곽에서의 생활이 처음이라 약간의 긴장감이 있었다.

온보딩
군무원 도전에서 퇴직까지 짤막한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