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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도전에서 퇴직까지 짤막한 여정

공무원에 도전하기

공무원에 도전하기 전, 나의 상태는

친애했던 동기 군무원 4명과 작별 인사를 하고 나는 다시 임용을 준비했던 원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어려운 시험을 뚫고 들어왔는데 나는 다시 시험을 준비해야 했다. 다시 개발자를 준비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준비했던 시험을 다시 준비하는 과정이 비교적 더 쉬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군무원이 아니라, 공무원을 선택한 이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라는 옛말이 어울리겠단 생각이 들었다. 군무원으로 지내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보람을 좀처럼 느낄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군인이 하는 업무를 할 수 없어서 비전투 업무를 담당하려고 지원했는데 생각보다 군대는 관심사의 분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았다. 군무원이 전투 업무에도 관여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일이 도전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혹한기 훈련 때 훈련소에서 화상회의를 준비하기 위해서 시스템에 접속하는 것? 그리고 훈련 중간에 송신자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면 스피커의 볼륨을 조절하는 것? 이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불합리한 지시도 있었다. 당직 근무 중 장롱 운전면허인 상태에서 심야 운전을 하라는 지시였다. 당직 부관이 해야 하는 업무였다. 여건상 어려우면 유연하게 조절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가장 높은 조직장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내게 운전 연습을 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미 나는, 조직장에게 조언을 구하기 전에 부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운전에 대해 미리 고민했었다. 부대에서는 주말에도 개인적으로 연습을 위해 배차해 주기는 어렵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자차가 없었다. 운전 면허는 있었지만, 군 운전면허가 없는 상태라서 신청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안내조차 없었다. “그냥 하라면 해”라는 패러다임은 나와 전혀 맞지 않았다. 그것에 굴복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것이 “군”의 색깔인가? 그러면, “군”의 색채가 빠지면 좀 더 보람을 느끼면서 재미있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

공무원 도전 과정

합격의 기쁨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다시 힘겹게 합격을 위해 달려야 했다. 연필을 그만 잡는 것이 꿈이었던 나는 언제 합격할지 모르는 여정을 다시 달려야 했다. 어쩌면 합격의 기쁨을 안겨 드렸던 부모님이 실망하셨을 텐데 과연 다시 그 기쁨을 안겨드릴 수 있을까? 원점으로 돌아오면 멀리 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빨리 열심히 뛰어야 하는데 잘할 수 있을까? 항상 불확실성의 연속이었다.

군무원 준비보다 힘들었던 것

마침 전산직 군무원은 마지막으로 “프로그래밍언어론”을 쳤을 때다. 그런데 공무원은 이미 4년 전부터 “프로그래밍언어론” 대신에 “정보보호론”으로 과목이 바뀌었는데 이 과목을 새롭게 공부해야 했다. 그런데 더욱 힘들었던 것은 “영어”였다. 공인 영어 시험 성적으로 대체가 가능했던 군무원과 달리 공무원 시험은 영어 과목이 있다. 공무원 시험에서는 영어 점수가 당락을 가르는 것을 넘어서 수험 기간을 좌우한다. 굉장히 부담이 되는 과목이었다. 하루에 8시간 이상 영어만 공부했던 적이 있을 정도로 부담이었다.
공부를 하면서도 군무원 동기들의 직장생활을 떠올려 봤다. 나와 달리, 동기들은 근무하면서 연차가 쌓이는데 나는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 마음에 걸렸다. 조급한 마음이 들 때면 항상 이 생각이 나를 힘들게 했다. 혼자서만 공부하기보다는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과 함께 공부한다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여 시험이 임박했을 때 컴퓨터 일반과 정보보호론 과목은 오프라인 강좌를 수강했다. 함께 공부하는 수강생과 선생님과 대면하면 덜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노량진 수험 현장에 발을 들였더니 합격을 기원하며 하루 빨리 이 자리를 뜨길 소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커피를 사러 카페에 들렀는데 합격 염원으로 찬 포스트잇이 가득했다.
5월의 장미가 꽃필 무렵, 힘든 마음의 시기도 지나가고 시험날이 다가왔다. 지방직 시험을 보기 위해서 시험장에 도착했다. 아버지가 바래다 주신 덕분에 시험장에는 수월하게 도착했지만, 너무 긴장했는지 속이 좋지 않았다. 시험 며칠 전에는 먹던 대로 먹으라는 인강 선생님의 조언에 식단 조절도 했건만 시험 직전에 배탈이 났다. 배탈은 처음 경험해봤다. 심지어 내 앞 사람은 다리를 흔들었다.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마음은 조급하고 시야각 안으로 흔들거리는 다리가 눈에 자꾸 들어왔다. 시험을 망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손을 들고 감독관에게 글씨를 써서 “앞 사람 다리를 떨고 있어요”라고 적고 보여드렸다. 위기를 간신히 넘기며 시험을 봤지만, 망했다고 생각했다. 끝내 불시험이었다는 인강 선생님들의 오피셜에 이따금 위로했지만, 합격은 물건너 갔다고 생각했다.
바다를 좋아하는 건 이때부터였을까? 마음이 너무 힘든데 당장 여행을 갈 만한 형편이 되지 않아 부모님께 바다로 놀러가자고 졸랐다. 흔쾌히 바다로 가족여행을 가게 됐다. 어렵게 준비한 시험인데 망쳤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으니 공부가 좀처럼 되지 않았다. 특히, 날이 더워질수록 공부는 체력적으로도 힘들었고 마음이 힘들어졌다. 이때 체력이 바닥나면 마음도 힘들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공부도 접고 마음을 접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멍을 때렸다. 정서적으로 안정시키는 데 바닷물을 보며 멍하니 보는 것이 최고인가 보다.
당연히 불합격이라고 생각하고 거의 한 달 동안 힘든 세월을 보냈다. 아니 그런데 웬걸…? 필기 시험에 합격했다고? 시험 망쳤다고 생각했는데? 지역에서 1명만 뽑는 시험이었는데 이게 됐다고? 왜? 납득할 수 없었다. 잘못 발표한 것은 아닌가도 의심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부랴부랴 면접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구꿈사 카페에 들어가서 당장 면접 스터디를 할 인원들을 구했다. 수많은 인터넷 강의들도 유료/무료 상관없이 장바구니에 담아 수강 신청 버튼을 눌렀다.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합격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간절히 준비했다. MBTI “I”가 분명한 사람인데 그 누구보다 “E”인 것처럼 면접 스터디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면접 당일, 스터디에 같이 참여했던 한 분이 마침 나보다 늦은 순번이셨다. 그래서 내가 면접을 어떻게 대답하고 있는지 들을 수 있었다. 그분은 내게 마지막 피드백을 주셨다. 이 피드백을 곱씹으면서 합격할 때까지 하늘에 맡기고 푹 쉬면서 최종 합격일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최종 합격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기다린 나는, 1명을 뽑는 자리에서 최종 합격했다.
지방직에 합격하기 전까지는 합격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없으니까, 내가 응시할 수 있는 모든 시험을 준비하려고 했다.

공무원 생활하기

돌아보면, 공무원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던 것 같다. 그래도 1시간 남짓 되는 거리였으나 연고지에서 가까운 지역으로 근무하는데다가 직장인들이 출근하는 ‘강남’을 피해갈 수 있어서 더욱 편했다(그래도 힘들어서 주말에는 곯아 떨어졌던 듯하다).

온보딩

군무원 임용 때는 신규 공직자교육이 굉장히 빨랐다. 하지만, 지방직 공무원은 그에 비해 온보딩 교육 시점이 너무 늦었다. 8월에 입사(수습)했는데 12월에 시 자체에서 1박 2일의 워크숍 형태로 교육을 진행했다.

경험했던 공무원의 일상

예상했던 대로 “군”이라는 색채만 빼면 업무는 거의 그대로였다. 그리고 이미 이전에 경험했던 적이 있어서인지 대부분의 업무가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관리해야 하는 범주와 규모가 컸기 때문에 장비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시 전체의 범주로 봐야 한다는 점이 힘든 일이었다. 그렇지만, 대략적으로 아래의 업무를 수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내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관리하기
운영체제
OA 프로그램 관리
시내 PC 및 전산장비 수리 용역업체 관리
전산장비 수리 요청
수리 용역업체 계약
시내 전산 장비 관리하기
PC를 비롯한 주변기기
시내 전산장비 현황 관리
전산 장비 보안 업데이트 관리
보안 업데이트 및 보안 프로그램 관리를 위한 내부 교육 진행
운영체제 버전 관리 (7 → 10)
*사랑의 그린PC
내구 연한이 지난 공공기관 전산장비를 소외계층에 무료로 보급하는 사업
그 외
산불 대기
수해 복구 작업
눈 치우기

가장 기억나는 보람을 느꼈던 추억

군무원 때는 그래도 바이러스 서버 체계 설치라는 업무라도 진행했는데 지방직 공무원으로 근무할 때는 더 난도 높은 업무를 수행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떠올리자면, PC 내에 보안 설정이 제대로 세팅되어 있는지와 프로그램이 깔렸는지 설정하는 작업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시 전체 노트북을 내가 일일이 점검했어야 했는데 전원 케이블도 달라서 전원 케이블을 꽂고 전원을 켜고 점검하고 시스템을 종료하는 작업까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전원을 켜고 점검하는 과정만큼은 빠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고민했다. 내 마음대로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수 없었던 이상, 내가 최대한 머리를 쥐어 짤 수 있는 영역은 ‘배치 파일’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배치 파일을 통해서 Windows 보안 설정을 할 수 있다면 시간이 빠르게 단축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마저도 제한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번거로운 작업을 조금이나마 단축시킨다면 업무 효율이 올라가지 않을지를 고민했다.
반복되는 업무 중에서 전산 장비나 포인터와 같은 주변기기를 대여하는 일이 많았다. 대여자는 어떤 구성품이 들어 있는지 인지하기 쉽지 않은 상태여서 물건을 반납할 때 하나씩 빠뜨리고 제출하는 분들도 있었다. 주의사항을 간략하게 뽑아서 넣어 두면 물건 관리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여할 때는 장부를 작성했는데 그것만으로는 전산 장비가 어디로 가 있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엑셀 시트로 관리하면서 현재 몇 대가 대여 중인지 한눈에 보여주는 대시보드를 만들었다(이때부터 프론트엔드 기질이 보였던 걸까). 크게 도전적인 일이 없어서 방황할 때는 조금이라도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공무원 그만두기

퇴직을 결심한 이유

나의 업무는 정말 단순히 장비나 라이선스 계약을 관리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이곳에서 더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잘할 수 있지만, 도전적인 업무라고 느낄 만한 부분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30년 동안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30년 동안 행복할 수 있는 곳일까? 아니었다. 군무원 때 고민했던 점을 나는 또 같은 문제로 고민했다.
보람을 느낄 수 없는 업무
적성에 맞지 않고 도전적이지 않은 업무 수행
잘할 수 있지만, 개인적인 성향과 반대되는 사무 업무
마찬가지로, 상위 조직 및 조직장의 불합리한 의사 결정
업무에 대해서 신입이 커버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서 면담을 신청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말 힘든 상태에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살아 남아야 하는 조직이었나 보다. 주어진 권한이나 직급에 비해서 책임이 너무 큰 것은 아니었나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마침내, 다시 나는 원점으로 돌아가야 했다. 군무원으로 임용된 동기들은 벌써 8급으로 진급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나는 과연 언제쯤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지위까지 올라가 볼 수 있을까?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또 다시 나 혼자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다. 마땅히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도 없는 것 같은데 어떡할까. 동네방네 “우리 아들 공무원 됐어”라고 자랑스러워 하시는 부모님을 또 다시 걱정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이번에도 개발자가 되어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을까?
그렇게 또 다시 바다를 찾아 포항 호미곶 앞바다. 동 트기 전이 가장 어두웠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비로소 적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발자’가 된다면 공무원과 달리 도전적인 업무를 마음껏 수행할 수 있다고… 그 기념으로 기계식 키보드를 샀다. 친구네 집에 갔는데 이렇게 LED가 번쩍번쩍거리는 키보드를 한 번 써보고 싶었다. 하루종일 코딩해야 하니 손가락이 피로하지 않도록 나에게 작은 선물을 해 주고 싶었다.
공무원을 준비하기 전, “개발자”를 준비할까 고민했던 대학생 시절… 그때는 “개발을 취미로 즐기라”는 이야기를 많이 찾아 볼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과연 개발자를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내게 던졌다. 이전에도 던졌던 질문을 공무원을 그만두기 전에 던져 봤다. “공무원 시험에도 두 번씩 합격했는데 이정도 노력이라면 개발자 취업도 거뜬히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개발자가 되었다. 그리고 교육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