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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무원 도전에서 퇴직까지 짤막한 여정

군무원에 도전하기

군무원에 도전하기 전, 나의 상태는

“개발자는 수명이 짧아서 40세가 되면 은퇴해야 된다더라. 지금 상황에서 취업도 잘 안되고 야근만 줄창 해”. 개발이 정말 재미있지만, 주위에서는 “개발은 취미로 해야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현실 세계에서도 종종 들었고 인터넷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도 많이 봤다. 우스갯소리로 개발자 커리어의 끝은 치킨집 사장님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으니까. 개발이 잘 안될 때 치킨집 사장님한테 물어보라는 이야기까지 떠돌았을 정도니까.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는데 섣불리 도전하는 것이 꺼려졌다. 그런 상황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외면하고 개발자가 되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 더더군다나 나는 급격한 변화와 새로운 도전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개발자가 되기 어렵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대학교 졸업 이후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 고민 끝에 “공무원”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2015년 당시만 하더라도 공무원이라고 하면 인식이 굉장히 좋았었는데 이 기류에 나도 영향을 좀 받았다.

군무원 도전 과정과 군무원을 선택한 이유

연필을 그만 잡는 것이 꿈이었다. 학창시절, 대학교 장학금을 노리기 위해 과 수석을 위해 피말리는 공부를 했던 적이 있다. “이번에 1등을 하지 못해서 전액 등록금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지난한 싸움을 해야만 했다. 이런 공부보다는 성장을 위한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개발자 되기를 꿈꿨지만, 냉랭한 현실 앞에서 용기를 내기에는 부족했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연필심을 부러뜨리는 용기 대신, 다시 연필을 잡고 최상위권을 노려야 하는 군무원 임용 시험에 도전했다. 그리고 군대라는 곳은 한국 대부분 남성들에게는 익숙한 장소이기도 하고 나도 다시 군에 “민간인” 신분으로 들어간다면 일은 가장 잘할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군인은 내 직업관에 맞지 않지만, 민간인으로 들어간다면 해 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군무원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과목의 시험을 봐야 하는데 “영어”라는 과목의 장벽이 높기 때문에 단기 합격을 위해서는 영어 시험을 보지 않는 군무원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엄연히 따지자면 영어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토익, 토플, 지텔프(G-TELP) 등의 공인 영어 성적을 증명하여 대체한다. 그래서 당시에는 전산 직렬은 한국사, 국어, 컴퓨터 일반, 프로그래밍언어론 이렇게 4가지를 응시하면 됐다. 당해 시험에서는 프로그래밍언어론에서 과락 때문에 탈락하는 지원자가 상당했는데 다행히도 나는 공부를 시작한 지 약 5개월 만에 합격을 거머쥘 수 있었다.

군무원 생활하기

둥지 떠나 생활하기

내게 기회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최종으로 발령 받은 곳은 충북 영동군에 있는 군 부대였다. 충청북도가 어디 있는지는 아는데 충주시, 제천시, 음성군, 진천군, 단양군, 괴산군, 청주시, 보은군, 옥천군까지는 알았는데 영동군? 너무 생소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위치를 설명할 때도 직접 영동군이라고 말하기보다 전라북도 무주군 위, 김천시 왼쪽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빨랐다. 서울에서도 꽤 멀리 떨어진 지역이어서 도시 지역을 떠나 생활한다는 것이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2022년, 영동역을 다시 찾았을 때의 풍경
임용 5일 전, 사전 답사를 위해 영동역을 찾은 당시 풍경

온보딩

신병이 입대하면 신병교육대대에서 5주간 훈련을 받듯, 군무원에 임용되면 육군종합행정학교에서 군무원 기본 교육을 받고 직렬별 학교에서 전공 교육을 받아야 했다. 나의 경우 육군종합행정학교에서 군무원 기본 교육을 받은 뒤 바로 정보통신학교에 입교해서 교육을 받았다. 연필을 그만 잡는 것이 꿈이었던 내 포부와는 다르게 이곳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문제될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매 순간 후회하고 싶지 않았던 나에게는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방법이었다.
정말 다행히도 나는 육군종합행정학교와 통신학교 두 차례 모두 최고의 성적을 거두게 되면서 임용된 지 4달이 지나기도 채 전에 표창을 두 번이나 받게 되었다.

군무원의 일상

지금의 맥락과도 비슷한데,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에서 병력을 충당할 수 없어 군무원은 군대에서 비전투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용사 또는 직업 군인이 감당하던 비전투 업무를 군무원이 수행하면서 군인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에서 협업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부대에서도 내가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발령 받은 전산 담당관 보직은 아래와 같은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시설 내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관리하기
운영체제
OA 프로그램 관리
시설 내 전산 장비 관리하기
PC를 비롯한 주변기기
부대에서 사용되는 PC의 보안 프로그램 설치 여부
네트워크 장비 관리 및 접근 관리(NAC)
생활관 IPTV 단말기 계약 등
영상 회의 진행 준비
영상 장비 정상 작동 확인
회의 중 영상 품질 모니터링

가장 기억나는 보람을 느꼈던 추억

연말에 바이러스 서버 체계를 설치하라는 업무가 상급 부대에서 하달됐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 개발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면서 웹 서버를 설치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내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가장 보람차고 재미있던 일이었다. 군 내부에서는 상용 인터넷 통신과 단절된 인트라넷 통신을 이용하는데 여기서 사용될 백신 서버 설치가 필요했는데 이때 리눅스 운영체제가 설치된 PC에 바이러스 서버를 설치하는 업무였다. 그렇게 예하 부대 중 가장 빠르게 설치해서 보고를 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다른 예하 부대에서 전화가 불날 듯이 나를 찾는 전화가 왔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할 때 보람을 느낀다는 점을 알게 됐다.

군무원 그만두기

근무지/공관 근처는 이렇게 휑하다

퇴직을 결심한 이유

직업불문하고, 자신의 한 일로 하여금 보람을 느끼는 것이 일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군무원 생활을 하면서 일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내가 하는 업무를 통해서 내가 보람을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보람을 느낄 수 없는 업무
각종 전투 업무 수행
잘할 수는 있지만, 개인적인 성향과 반대되는 반복적인 사무 업무
상위 조직의 불합리한 의사결정
이런 고민들로 내가 ‘30년 이상 군대라는 곳에서 행복하게 근무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는데 대답은 항상 ‘No’였다. 그러다 우연히 어느 순간 사무실 복도 모니터에 비친 문구 하나를 보게 됐다.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이다”였다. 빠르게 취업하기 위해서 일단은 달려 왔는데 그 방향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 왔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조금이라도 젊을 때, 사회에서 나를 받아들이기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때 빠르게 리셋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선택지에 두지 않았던 지방직 공무원으로 다시 도전해 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군무원 퇴직 후 지방직 공무원 생활을 준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