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운동을 싫어했을까?
예전에, “금쪽 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에서 독특한 케이스로 오감 중에 몇몇 감각이 예민한 아이가 출연한 적이 있다(오래 돼서 기억은 잘 안 남). 오감이 예민한 아이 중 촉각이 예민한 아이가 있었는데 촉각이 예민하면 옷을 입지 않으려고 한다. 기저귀를 뗄 나이가 됐는데도 속옷을 입는 느낌이 낯설어서 고충을 토로하는 부모들도 나왔던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나도 운동을 왜 싫어하는지 유년기 시절을 되뇌면 촉각이 예민했던 아이는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나는 막대사탕을 먹다가 흘린 침 때문에 손가락에 묻은 끈적이는 촉감도 예민해했을 정도로 촉각이 유달리 예민했다. 젖병을 빨다가 옷에 흘린다면 갈아입어야 직성이 풀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후 유년기 시절에도 이런 끈적이는 느낌은 극히 싫어했을 뿐만 아니라 땀을 흘리는 것에도 예민했다. 물도 아닌 촉촉하고 끈적이는 액체가 내 몸에 착 붙는 촉감이 불편했다.
도전하기 전 나의 모습
학창 시절에 체력장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치 국가대표 선발전처럼 많은 종목을 매년 실시해야 했다. 나에게는 지옥과 같은 일정이었다. 공부도 하기 싫은데 이제 체력장까지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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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장 종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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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윗몸 앞으로 굽히기 (좌전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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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몸일으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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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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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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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던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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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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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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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m 달리기
조금은 창피하지만, 학창 시절에 걷기 말고는 운동을 하나도 안 했던 나로서는 오래달리기 종목이 내게는 가장 유리한 종목이었고 유일한 상위권 종목이었다. 당시 멸치라고 불릴 정도로 키에 비해 체중이 낮았다. 모두가 살 좀 찌우라고 걱정해주시던 시기에 다행히도 폐활량은 좋았던지 오래 달리는 것엔 강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고등학생 때는 워낙 날고 기는 급우들이 많아서 중위권으로 내려갔다.
학창시절에는 내가 잘하고 재미있어 하는 것에는 무한한 흥미를 지녔지만, 내가 어렵다고 생각하거나 약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보강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던 것 같다. 내겐 운동이 그러했다. 정말 창피한 일이지만, 아직도 나는 구기종목에서는 탁월한 둔재이다. 운동신경이 나쁘다고 생각해서 공을 날려 차는 것조차 힘겨워하던 내게 운동하는 것은 어렵고 두려운 일이었다. 학업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도전적인 일까지 하기에는 내게 에너지가 모자랐나 보다.
도전의 시작
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
남자들에게는 보통 군생활을 하면서 반(半)강제적인 운동이 시작된다. 나에게도 그러했다. 하지만, 정말 창피하게도 나의 군생활 시절 체력 검정 성적은 형편없었다. 심지어 신병훈련소에서 5주간 억누를 수밖에 없었던 나의 식욕은 자대에 가서 폭발하고 말았다. 사회에서는 초코 과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유달리 자대에 가서는 다이제 초코 과자에 끌렸다. 습관적으로 취식한 결과 입대 전보다 20kg가량 체중이 늘었다. 물론 근육이 아니라 체지방이었다. 다행히도 군생활 막판에 꾸준한 유산소 운동과 절제된 식습관으로 체중을 감량했지만, 정말 체중만을 감량했을 뿐 체지방을 감량했던 것은 아니었다. 볼록 튀어나온 나의 뱃살을 보면서 체중계에 보이는 숫자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군대에서 체중을 감량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던 뱃살이 내게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이제 이 뱃살을 마저 빼야겠다.’ 이 시기가 내게 보디빌딩 태동기였다. 운동에 소질은 없지만 그래도 꾸준히 한다면 뱃살은 빠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운동을 시작한 이후 뱃살도 들어가고 어느 새 운동한 흔적이 몸에 하나 둘씩 보이게 되었다. 마침 그 시기에 나는 공무원을 그만두는 시기였다. 인생에서 남들이 원하는 일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나다움을 찾는 여정이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하던 찰나 바디프로필 촬영이라는 버킷리스트를 이뤄 보고 싶었다. 소위 먹는 것까지가 운동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 나의 경우 이전까지는 운동하더라도 운동은 운동에서 그쳤다. 하지만, 바디프로필 촬영을 준비하면서 먹는 것까지 운동임을 알게 되었다. 단백질 목표치를 정하고 목표량에 맞게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닭가슴살을 먹는 습관이 시작되었다.
많고 많은 운동 중 보디빌딩에 도전한 이유
사람들과 운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헬스를 할 때 성취감이나 보람을 느끼기 어렵다고 내게 이야기한다. 수영을 한다면 물에 뜨거나 어느 순간 헤엄칠 수 있는 순간이 있는데 헬스는 그런 보람을 느끼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걸리더라도 성취를 체감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보니 나는 성취감이 바로 느껴져서 보디빌딩을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에는 워낙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던 탓이 큰 것 같다. 그래서 가장 쉽고 진입 장벽이 낮은 운동을 골랐을 뿐이고 소질이 없는 만큼 남들보다 더 오래 더 꾸준히 해야 성과가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꾸준하게 운동할 수 있었던 이유
수험생 시절이나 개발자를 준비하는 시절이나 운동이 유일한 낙이 되는 환경이 컸던 것 같다. 아무리 공부가 즐겁고 개발이 즐겁더라도 한정된 집중력과 체력이 있기 마련인데 이때마다 중간에 흐름을 끊고 운동에 다녀오면 활력을 되찾을 수 있어 좋았다. 공부를 하거나 취업 준비를 하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간헐적으로 엄습해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마다 운동은 나의 불필요한 사고 회로를 차단해 주고 공부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했다. 뿐만 아니라 풀리지 않았던 문제도 운동을 통해 활력을 되찾고 오면 맑은 정신을 통해 문제를 풀 수 있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힘든 시절에 내게 활력을 불어넣어 준 운동은 직업을 가진 이후에도 포기할 수 없었다. 오히려 운동을 하기 전보다 열정에 불이 붙게 되었다. 그래서 직장을 다니더라도 항상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생활 계획을 유지했다. 심지어 자금난에 시달려서 혼자서 깰 수 없는 한계의 벽을 깨기 위한 나의 시도가 시작되었다. 공무원을 그만두면서 자금을 충당할 수 없었던 나는 그동안 혼자서 운동을 했는데 PT를 받은 이후 차츰 자세가 깨져가고 몸에서 변화를 찾기 어려워진 나의 모습을 보며 한계를 깨줄 수 있는 코치를 찾게 되었다.
도전의 결과
아직 도전을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019년, 2021년, 2022년, 2023년 바디프로필 촬영을 4번째 도전하고 있을 정도로 상당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바디프로필 사진은 개인 소장을 목적으로 했지만, 친구들이 궁금하다며 보여달라고 하면 안 보여 줄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그들이 나서서 내 사진을 자랑해 주는 아주 희한한 일도 벌어졌다. 그러면서 나의 사진을 우연히 봤던 고등학교 동창이 내 바디프로필 사진을 보고 학창시절의 나와 이미지 매칭이 되지 않을 정도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내가 변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그동안 보디빌딩을 위한 결과물로써 사진을 촬영하거나 신체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면, 최근에는 이직하고 나서 휴가를 갈 때, 회사에서 플레이숍이나 축제 행사를 할 때 나의 운동 능력을 객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중 하나가 회사에서 주최한 ‘우아하계 어울림픽’ 축제였다. 팀끼리 참여하면서 몇 가지 체력 테스트를 통해 점수를 올릴 수 있는 종목이 있었는데 이때 나의 발전된 운동신경을 비로소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정말 우연히도 앉아 윗몸 앞으로 굽히기(좌전굴)와 제자리 멀리뛰기를 측정해 볼 수 있었는데 나의 좌전굴 기록은 16cm, 제자리 멀리뛰기는 235cm가 나왔다. 그런데 이는 국민체력검정(국민체력 100)에서 1등급을 웃도는 수치였다. 포스팅을 하면서 정보를 확인하는 나 자신이 이렇게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때때로 학창 시절에 “더 많은 도전을 해볼걸”, “그렇게 해서 성취감을 느껴볼걸” 하며 후회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어쩌면 그 당시 일찍부터 성취감을 느꼈다면, 도전하는 것에 의의를 두기보다는 투자한 만큼의 결과를 더 기대하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그 기대감은 때때로 내게 부담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학창 시절에 도전하지 않아 성취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나의 경험이, 보다 낮은 기대치를 가지게 한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둔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8주 만에 체지방이 몇 퍼센트가 걷힐 것을 기대하지 않고 그저 운동하기 위한 노력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그래서 투자 노력 대비 얼마만큼의 결과치를 뽑아낼 수 있는지에 집중하기보다는 도전하는 것에 의의를 두게 되었고 의도치 않은 성과는 내게 큰 기쁨이 되었다. 이런 감정은 내가 꾸준히 노력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