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선택은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요즘 드는 생각인데,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과거의 선택이 현재의 나를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는 크게 와 닿지 않았지만, 요즘 나의 선택으로 인해 나타나는 큰 차이를 느끼고 있다.
당시에는 나에게 있어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 것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었다. 다른 일도 해볼 수는 있었겠지만, 가장 현실적이고 미래를 내다본다면 최선의 선택지는 공무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교를 자퇴하고 배수진을 치고 공부에 몰두했던 시절이었다. 처음으로 2016년 8월 즈음에 군무원 필기시험에 합격했고 2018년 6월 말에는 지방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모두가 처음엔 장밋빛 미래를 꿈꾸듯 나 또한, 주무관으로서 펼쳐질 희망찬 미래만 꿈꿨고 이면에 숨겨진 모습을 바라보기에는 통찰이 부족했다. 이전에 공무원을 그만두고 개발자가 된 이유에서도 적었지만, 다시금 회고해 본다. 당시에는 "왜 공무원을 그만 두나? 너 문제 있어?"로 해석할 여지가 아주 아주 많았기 때문에 풀지 못했던 사연까지 구구절절...
하고 싶지 않은 일 내려놓기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일단 하고 싶지 않은 일부터 내려 놓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생계가 걸린 문제이다 보니 쉽게 용기내기 어려운 문제임이 분명했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싶었던 이유
대입 시험은 원하는 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않더라도 점수에 맞춰 대학을 갈 수는 있지만, 공무원 시험에서는 상위 20%에 들지 못하면 탈락이다. 그렇게 어려운 시험에서 합격해 놓고서 왜 나는 그만둬야 했을까?
공무원 국어 1타 강사 이선재 교수님
1. 적성에 맞지 않았던 사실상 사무직 업무
적성에 맞지 않아도 잘할 수 있으니까 업으로 삼아도 괜찮겠지 했던 생각은 굉장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가지만, 일이 너무 하기 싫었다. 개발자가 개발만 잘한다고 다가 아니듯 사무직도 사무자동화 프로그램만 잘 다룬다고 해서 다가 아니었다.
개발자 커뮤니티의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개발은 취미일 때 즐겁다"는 조언을 맥락없이 받아들인 내 탓이 크다. 물론, 마감 기한 안에 무리한 요구사항을 쳐 내야만 하는 기업에 근무했다면, 스트레스 받는 것이 맞다. 나도 SI에 다닐 때 그런 비슷한 고민을 했던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돌아 보면 적어도 개발 자체가 싫었던 적은 없었으며 인생을 살면서 개발을 업으로 삼았을 때 제일 낙이 컸다. 지금도 그렇다.
2. 수직적인 조직 문화와의 갈등
수직적인 문화를 체험하고 싶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레거시 박물관인 공직의 문을 두드리면 된다
함께 하고 싶은 시니어 동료의 부재
개발자가 적성에 맞는 지금도 체력이 달려서 일이 힘든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가 좋고 문화가 좋아서 이건 크게 문제되는 일이 아니다. 내가 알아서 컨디션 회복해서 열심히만 하면 해결되기 때문이다. 공무원으로 재직했던 때에도 타 부서 동료에게 무시당하지 않도록 잡아주시던 든든한 과장님이 계실 때가 있었다. 일이 힘들더라도 보람차고 재미있었다. 군대에서 근무했을 때부터 전산과 관련된 보직은 거의 일반적으로 암적인 면을 떠올릴 때의 슈퍼 을의 이미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타 부서 동료의 전산 장비가 고장나면 가져다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당시 과장님은 타 부서가 직접 찾아오라고 바꾸셨고 곤란한 내부 민원 전화를 받으면 당신에게 돌리라고 하실 정도로 파격적인 분이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가 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과장님이 다른 부서로 발령을 받으심과 함께 이 문화는 사라졌다.
나에게는 벅찬 대면 소통 비용
지금 내가 몸을 담고 있는 회사에서는 구성원이 심리적인 안전감을 느끼도록 배려하는 분위기이다. 어떤 의견을 말하더라도 보복당하지 않는 분위기. 미처 문서화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막연하게 질문을 하게 될 때가 왕왕 있다. 그럴 때마다 그 어떠한 질책도 없이 친절하게 문서를 확인하시라고 링크까지 전달 받는다. 이런 일이 자주 있으면 안 되겠지만, 공무원일 때는 이런 것들 눈치 엄청 봐야 하니까.
다른 부서에 협조를 요청이 필요할 때는 개발자처럼 슬랙의 다이렉트 메시지처럼 문의를 드리는 걸 생각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공공기관의 새올 메신저는 슬랙 반푼 어치도 따라가지 못할 뿐더러 업무용으로는 잘 활용하지 않기 때문. 그래서 메신저로 문의드리는 것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화를 드려서 직접 찾아가서 여쭤봐야 한다. 이것이 효율적일 수도 있겠으나 항상 그럴 리는 없지. 확실히 내가 경험한 일반적인 기업 문화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업무
내가 개발자로 경험했던 일은 당시 공직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다. 내가 임용되기도 전에 분실되고 최신화되지 않은 장비를 현황 파악하라는 팀장님의 지시가 있었는데 전적으로 히스토리 파악이 필요했다. 힘들다는 고충도 토로했다. 하지만 팀장님의 결론으로 나오는 이야기는 항상 "야근이라도 해서 알아 내서 100% 최신화해야 해. 야근 해!"였다. 임용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신입한데 너무 가혹한 신고식 아니었을까? 전임자와 페어로 같이 일할 수 있는 분위기만 만들어주셔도 충분했을 텐데...
얼마나 많은 하위직 공무원이 희생되어야 할까? 고위직 분들께서는 노력을 하고 있기나 할까?
낮은 대가(보수)
흔히들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이라며 봉사해야 하니까 월급을 적게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묻는다. 하지만, 공무원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한다. 자신의 역할만 할 줄로만 알고 있지만, 지방직 공무원은 특히 해당 지역의 축제가 있다면 강제 동원된다. 요즘, 건조주의보 때문에 2023년에는 인천 강화도 마니산에서 산불이 났는데 이때 지방직공무원도 화재 진압에 동원된다. 기본급이 낮을뿐더러 수당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예전에 근무할 때 실수령액이 9급 3호봉 기준인 내가 150만 원도 채 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텅장을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격무에 시달리는 9급 공무원 1호봉이 세후 200만 원도 받지 못하는 사실에 놀랐다.
내가 경험했던 개발자는 그래도 직급이 높으신 분들이 더 많이 일하고 더 중요한 일을 하는데 내가 경험했던 공무원은 이와 정 반대였다. 일반행정직 공무원의 경우에는 주민센터에서 민원을 보는 업무가 많은데 9급은 민원을 보고 윗급은 민원을 보지 않는 곳에서 일한다(아직도 그러려나? 모든 곳에서 그런 건 아닐 테지). 궂은일은 9급이 더 많이 하는데 왜 보수는 적을까?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항상 힘든 일은 9급 주무관이 담당해야만 하는 걸까? 수직적이고 퇴폐적인 문화를 언제까지 가져갈 것인가? 국가는 언제까지 낮은 직급의 힘없는 공무원을 헐값에 부려먹을 것인가? 화도 좀 난다.
주변의 조언에 휘둘릴 것인가?
그만두겠다고 다짐하면서 면담을 시작한 이후 동료들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들었다.
주로 동기보다는 선배 주무관들의 조언이었다. 그리고 내면에서 들리는 작은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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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은 10년은 보고 일해야 살만 한데 너무 안일한 판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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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에서도 적응이 물론 힘들지만, 사기업은 경쟁까지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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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리지 않는다는 안정성 하나만 보고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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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뭐 먹고 살지? 결단은 용기있게 내린 것 같았는데 잘 먹고 살 수 있을까?
적성에 맞지 않는 일만을 찾으며 전전긍긍하던 내 인생을 바라보니 초라했다. 치열하게 경쟁한 끝에 결국 내가 바라던 게 이것이었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는 상상을 하니 너무 아깝기도 했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간다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에 내가 맞추며 평생을 살아야 할 생각이 너무 막막했다. 지금은 "왜 그만뒀어요?"라는 이야기에 이렇게 이야기한다. "제가 지금까지 공무원을 한다면 아마도 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라고. 반문해 볼 수 있다. 만약에, 나의 현실이 끔찍하지는 않았고 견딜 만한 수준이었다면 나는 나의 울림에 따랐을 것인가? 잘 모르겠다. 그저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당시의 현실에 감사할 뿐...
"인생은 하고 싶은 대로"
요즘 심심찮게 들려오는 "공무원"과 관련되는 기사를 보고 있노라면, 등골이 오싹해지기까지 한다. 이전까지는 선망받는 직업이었고 그만두는 것을 만류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따랐다면? 나다운 선택을 하지 못했기에 나는 더욱 불행해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공직에서 쌓인 경력을 가지고 뒤늦게 개발자를 준비하기에 더욱 힘들어졌을 것이다.
남의 조언을 귀담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상반된다면 과감히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는 점을 배웠다. 단지,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으로 바라본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하기에는 인생은 짧다. 인생이 아깝다. 난, 이때부터 주도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던 듯하다. 작은 선택이라도 그것이 도덕이나 법규를 거스르지 않는다면,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으로도 사기 힘든 시간으로 값비싸게 배운 교훈이 아닐까?
하고 싶은 일 선택하기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가장 심장이 뛰는 일은 개발이었다. 개발에 대한 열망이 컸다. 그래서 결국, 다시 처음 시작 지점으로 돌아왔다. 개발자는 취업이 어렵고 커리어의 끝은 치킨집 사장님이라고 생각하던 그때로 돌아왔다. 그때는 지레 겁을 먹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개발자 시장에 뛰어들었다. 열심히 준비했다.
다시 일어서자, 다시 도전해 보자.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머리를 식힐 겸 여행하며 포착한 일출. 구름이 끼었지만, 제법 분위기 있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어떤 선택이 이로울까? 그 선택으로 나는 지금 행복한가?
그렇지만, 현실은 암담했다. 주변 친구들은 이미 취직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다듬어 나가는 정도에 올라탄 중니어가 되었고 2017년 나는 군무원을 내려놓았지만, 동기들이 진급하는 소식을 들었다. 나홀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다. 또 다시 문을 두드렸던 지방직도 2019년 그만두면서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언제쯤 그들과 같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열심히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의구심이 들었다. "나, 정말 잘 하고 있는 걸까?" 그럴 때마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글귀로 나를 위로하며 힘을 얻었다. 그러면서 “치열한 경쟁도 극복했으니 못할 것이 없다.”라는 생각을 되새기며, 마음속의 의구심을 물리쳤다. 부모님을 비롯해 모두가 나의 미래를 걱정했지만, 나는 나 자신을 믿었다. 나만의 삶을 살아보기 위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긍정의 훈련 덕분인지 나에게는 꿈만 같았던 내가 그린 미래가 성큼 다가왔다. 공무원 시절의 어려움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도 개발자로 생활하면서 아래와 같은 부분이 나와 성향에 맞는 것 같아서 굉장히 행복했다.
개발자가 되고 나서 얻게 된 긍정적인 변화
적성에 맞는 일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것과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퇴근 시간만을 바라보며 일에 쫓기던 내가, 이제는 시간에 쫓기게 되었다. 일하면서 하루가 금세 지나가는 경험은 이제껏 하기 드문 경험이었다. 더더군다나 즐겁고 재미있는 일을 하며 보수를 받을 수 있으니 일하는 날 자체가 즐거웠다.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는데, 일터에서 행복하지 않다면 나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민했었다.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던 어둠 같은 터널을 지나고 이제는 행복함이 가득한 일터에서 개발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너무 감사했다.
함께 하고 싶은 동료
공무원이었던 시절, 보직이 바뀌면 인수인계가 원래 제대로 되지 않으니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첫 직장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부터 배워서인지 개발자가 되었어도 여전히 도움을 받는 바람직한 문화에 스며들기 어려웠다. 이슈 하나로 골머리를 썩일 때 동료 개발자분들은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신다. 그게 익숙지가 않았다. "꿈인가???? 왜 날 도와주시려는 거야????".
너무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동료
공직 사회에서는 서로가 일을 하기 부담스러워하고 궂은 일은 막내가 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지만, 내가 경험한 개발자의 세계에서는 문화가 정 반대였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는 문화였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진취적인 꿈을 꾸며 함께 성장하는 세상에 내가 발을 디딘 것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주변의 판단에 흔들려서 내가 그동안 쌓아 온 결과가 너무 아까워서 도전을 포기했다면, 나는 지금과 같이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까? 세월이 지나면서 과거의 선택에 따른 차이가 점점 두드러진다.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어 뿌듯하다. 지금까지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공무원 시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개발자로서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이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확신한다. 이 경험을 통해 배운 과정은 앞으로의 인생과 커리어에서도 소중한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앞으로도 나만의 길을 찾아가며, 도전과 성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번외편
이 글을 쓰고 나서 우연히도 유튜브 알고리즘이 아래의 동영상을 추천해줬다. 2020년도에 방영된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 프로그램 중 일부이다. 하지만, 본문에 첨부하기에는 내용이 산만해질 것 같아서 짤막하게 아래의 코멘트와 함께 첨부했다.
한국 직장 문화 중 수직적 조직 문화의 모범사례는 공공기관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멈춰 버린 공공기관 높으신 분들이 보고 경각심을 가지셨으면 좋겠다. 일하기 좋은 문화를 만들어 보자고요
“우리는 지금 선진국 군대로 바뀌고 있는데 회사가 군대보다 나아야 할 거아니에요. 그런데 군대만도 못한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