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회고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더 늦기 전에 2020년을 회고해 본다. 2020년은 대개 개발자로서 성장하고자 준비하고 도약한 한 해라고 평가하고 싶다. 나는 그동안 개발자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직업의 절대적 안정성을 보장하는 공직의 자리를 걸었는데 공무원을 그만두고 개발자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빠른 선회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동안 배웠던 컴퓨터 공학적인 지식을 정리하고 프로그래밍적인 감을 키우며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개발사에 취직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개발자 --init
국비지원 학원에 등록하기 이전에 국비 학원에 관한 좋지 않은 시선들이 많았다. 특히 강사는 복불복이고 가르치는 커리큘럼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잘 가르칠 리가 만무하다고. 그리고 8시간 동안 배우는 내용이 방대해서 그걸 다 소화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랄 것이라고들 하였다. 그러나 이것 말고는 딱히 선택권이 없던 나에게는 그저 기회를 잘 활용하는 것뿐이 남아 있지 않았다.
등원을 일찍하려고 인증한 건 아니고 출석 인증을 깜빡할까봐 만든 습관. 회사에 출근할 때도 항상 출근 기록을 캡처한다.
세월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XP를…
그런데 나의 경우에는 위의 이야기와는 조금 달랐다. 전산직을 준비하기 위해 그간 학부 시절 배웠던 컴퓨터 일반과 정보보호론을 공부하며 공학적인 지식을 반복하며 학습하게 되었다. 이러한 지식을 기반으로 다시 프로그래밍하는 관점에서 바라보니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탄탄한 공학적인 지식을 어느 정도 소화한 상태에서 수업을 들었고 프로그래밍 경험도 처음은 아니어서 생각보다 수월했다. 그야말로 평생토록 배운 개발에 필요한 모든 개념이 하나씩 차곡차곡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정말 국비 학원에 다닐 때는 오가는 걱정 빼곤 행복하다는 생각뿐이었다.
매일 5시에 기상하여 도시락을 싸고 6시까지 헬스장에 도착해 운동하고 7시에 학원으로 출발했다. 8시 전후에 학원에 도착하면 그 누구보다 하루를 빨리 시작한다는 상쾌한 느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수 있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만큼은 개운했다.
그동안 못 해 본 공부 해보기
국비학원에 등록하기 이전에 남는 시간이 조금 있었다. 이때 버킷리스트를 실행하고자 했던 것은 수학 공부였다.
정말 수학이 얼마나 어려웠으면 내가 학창 시절에 그렇게 무서워하고 헤맸던 걸까? 내가 배웠던 정승제 선생님께 EBS 50일 수학을 배우고자 했다. 기본적으로 수학적 사고 능력만큼은 배양하는 것이 개발자로서 커리어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작한 공부였다. 수학이라고 하는 것이 그저 어려울 줄만 알았는데 이 또한 언어와 같이 질서가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어렵게 접근해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남은 기간이 애매해서 다 끝내지는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도전하면 안 될 것은 없다는 것을 배웠다.
처음 해보는 협업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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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디즈를 클론한 스프링 프로젝트 이디즈(EYDIZ)
학부 시절에 팀별로 프로젝트 기획, 디자인, 코딩, 문서작성 역할별로 하는 때도 있었지만, 자바 소스 코드를 파트별로 나누어서 작업했던 경우는 처음이었다. 국비 수업을 듣고도 이 정도 프로젝트를 만들어 구현할 수 있다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희열과 동시에 와디즈와 같은 웹 서비스가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개발진의 노력이 들어있다는 것도 동시에 깨달았다.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웹으로 개발하는 것이 꽤 만만찮은 작업이라는 것을 이번에 몸소 깨닫게 되었다.
하반기, 개발자로서의 길을 걷다.
감사하게도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는 나의 잠재 역량을 알아주셨다. 정말 기쁜 마음으로 다니게 되었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출퇴근 거리. 지하철도 2번씩이나 환승을 해야 하고 1시간 30분을 지옥철에 갇혀 출퇴근해야 했다. 고등학교를 멀리 다니면서, 국비지원 학원을 다니면서 오랜 시간 지하철에 갇혀 있는 것은 생각보다 유쾌한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매일 그 시간 동안 영어 단어를 외우는 등 자기계발을 하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다. 하지만 회사에 도착하고 나면 맑은 정신으로 개발할 자신은 없었다. 그런 상황을 원하지 않아서 생활비가 만만찮게 들어가도 새로운 곳에 둥지를 트는 것을 선택했다.
자바스크립트와 친해지기
회사에서는 자바스크립트를 이용한 라이브러리와 스프링 부트를 사용하여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그런데 주로 UI 작업이 많이 할당되기 때문에 자바스크립트 언어와 친해질 기회가 있었다. 이슈가 없는 틈에는 자바스크립트의 문법을 공부하면서 자바스크립트는 자바의 클래스라는 사상과는 조금 다른 프로토타입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알고는 있었는데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Git과 친해지기
예전에는 작업할 때 고작 아는 것이라곤 Github에 push하는 정도가 다였다. git log를 수정하거나 브랜치를 새로 만드는 정도까지가 나의 최고 수준이었다. 새로 판 브랜치를 마스터 브랜치에 병합하는 것조차 벌벌 떨며 클릭을 하곤 했는데 이제 Git이라는 개념을 공부할 기회가 생기다 보니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작업하면서 Git과 좀 더 친해질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개발자로서 일해본 후기
사실, 개발자로서 진로를 정하고자 할 때 나는 역설적이게도 개발을 좋아하기 위해서 개발자의 길을 걷지 않았다. 개발자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이 개발자의 종착지는 치킨집 사장님이다와 함께 볼 수 있는 것은 개발은 취미로 할 때가 가장 재미있다는 것이다. 개발이 일이 되어 버리면 더는 흥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 어린 나이에 봤을 때는 가장 무서운 일이었다. 나는 개발이 좋아서 일을 시작했는데 개발이라는 일이 싫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개발이라는 일이 싫어지기는커녕 이슈를 할당받았을 때 이슈를 어떠한 관점에서 접근하고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풀어나가는 과정이 너무나 재미있다.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선임 주임님께 말씀드릴 때가 가장 유쾌하고 재미있다. 코드를 잘 짰는지 리뷰(리뷰라고 쓰고 심사라고 읽는다)를 받을 때면 면접 때 심장이 콩닥콩닥거렸다.
더는 갈 데가 없다는 마음으로 배수진을 치며 공부하자고 다짐하며 공직의 길에 올랐는데 이것을 한순간에 포기하고 개발자의 길로 선회하는 것이 주저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내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평생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러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나에겐 끔찍했다. 용기 있게 공직의 길에서 돌아서고 개발자로서 성장하고자 첫 회사에 발을 들인 것은 나로서는 용기 있는 결단이자 의미 있는 성과였다고 본다. 이는 내가 실력이 뛰어나서라기보다 꾸준히 공부할 수 있는 습관을 만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꾸준히 공부하며 성장하는 개발자로서 2021년을 걸어가고자 한다.